딴지마켓 락기
남자 직장인의 소울 푸드인 제육볶음을 먹던 날이었다. 늘 먹던 제육이었는데, 오늘은 뭔가 다른 맛들이 느껴졌다. 어제는 분명 맵고 단 고기의 맛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복합적인 맛이 나면서 조금 더 세밀하게 구분이 가능했다.
내일은 제육으로 합의 하는 겁니다.
나는 초능력이 생긴 줄 알고 손목에서 거미줄이 나가는 모양을 해보았으나 거미줄은 나가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했다. 갑자기 복합적인 맛이 나는 이유가 뭘까?
‘그냥 많이, 자주 먹어서였군.’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그냥 많이. 그것도 자주 먹다 보니 입이 트인 것이었다.
그럼, 식혜 맛은?
생각해 보니 아메리카노를 처음 마실 때도 이랬다. 맛보다는 카페인 포션으로 마셨던 커피에서 향긋한 내음과 고소한 맛이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이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자주 접하다 보니 경험치가 쌓여 레벨업한 것이었다. 순간 ‘제육이 더 먼저여야 하지 않나? 커피가 왜 먼저이지?’하는 사소한 생각이 들었으나 넘어갔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1~2년 해봤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오랜 기간 먹어보고 경험해 보고 시도해 봐야 나오는 것이 짬바다. 그래서 식혜를 마실 때는 그 바이브가 나오지 않는다.
왜? 단순히 식혜를 많이 마셔보지 않아서 그렇다. 곰곰이 기억을 떠올려 봐도 1년에 식혜를 몇 번 마시지 않는다. 아니, 1년 동안 식혜를 마신 적이 없던 해도 있다. 그만큼 전통 음료 식혜는 내 생활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었다.
결국 만드는 사람의 경험을 따라가기 힘들다.
예전에 매운 걸 못 먹는 매운 냉면집 사장님이 TV에 나온 적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매운 냉면집이라 저곳 대표님이 고수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특이한 집 말고는 제조하는 곳 사장님이 가장 많이 맛을 보게 된다.
제빵사보다 빵을 많이 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맛이라는 게 주관적이고 취향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그건 추구하는 맛에서 갈리는 것뿐이지 더럽게 맛없는 건 다들 맛없다고 하기에. 사장들은 주변의 말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의 주관을 확고히 가져가면서 맛을 개발한다.
식혜가 특히 그렇다. 자주 마시는 사람이 드물다 보니 오랫동안 마시면서 맛을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다. 그래서 결국 만드는 사람이 제일 많이 맛보게 되는 거고, 연구하게 되는 거다.
다만, 우리는 식혜를 마실 때 비슷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네니아 전통 식혜의 차별점을 글로 알려 드리려고 한다.
고집스럽게, 고생스럽게
보통 식혜는 고두밥으로 지어 엿기름을 넣고 섞어 당화 과정을 거친다. 잘 섞이고 밀착시켜야 하는 이 과정은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혹은 엿기름을 섞고 누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식혜의 첫 과정이나 여기서부터 지방마다, 제조사마다 만드는 방향이 달라진다. 그리고 네니아 전통 식혜를 만드는 곳은 첫 과정인 엿기름 띄우기에서 손으로 주무른다.
깨끗한 천 안에 넣고 손으로 직접 주무른다.
진짜다. 손으로 다 주무른다. 그것도 긴 시간을 할애해서 장갑을 낀 채로 조물딱조물딱 주무른다. 몇 시간은 주무른다고 하니 고집으로 보이기도 고생으로 보이기도 하다. 여기서 질문은 하나다. 왜 주무르는 것인가?
대답은 간단했다. 맛 때문이다. 밥, 그것도 고두밥이 아닌 압력밥솥 밥에 엿기름을 넣어 손으로 정성껏 치대면 당화할 때 식혜의 단맛이 더욱 올라간다고 한다. 엿기름 당황의 단맛이 올라가니 설탕을 적게 넣어도 될 정도라고 한다.
맛에 대한 고집. 윗물만 쓰는 이유
맛에 대한 고집은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당화가 끝난 식혜를 12~15시간 동안 ‘가라앉히기’를 한다. 막걸리나 동동주 만드는 방법 대해 아시는 분이라면 익숙할 거다. 쌀로 술을 빚어 ‘가라앉히기’를 한 다음 위에 맑은 술은 동동주고 밑이 탁주인 막걸리가 된다.
식혜에서 ‘가라앉히기’를 한다는 것은 생산량이 대폭 준다는 의미도 된다. 그럼에도 ‘가라앉히기’ 이후 윗물만 떠서 식혜로 내놓는다는 것은 맛에 대한 고집이라고 보기에 충분하다.
밝기만 조절해서 보자. 회색빛 보다는 맑은 살구색이란 걸 확인할 수 있다.
고집에 대한 마지막은 간단한 에피소드로 마무리 짓겠다. 제조 업체에서는 식혜를 만들 때 아주 소량의 생강을 넣는다. 그 양이 매우 적지만, 미묘하게 청량한 맛을 더해준다는 대표는 생강을 절대 빼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제품이 나가기 전 맛을 보았는데, 맛이 조금 달랐다고 한다. 그래서 원인을 찾던 중 소량의 생강을 넣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전량 자가 소비하였고 판매는 하지 않았다.
나라면 하지 못했을 선택이다. 나라면 ‘생강 없는 식혜’라고 팔았을 텐데 대표는 판매 자체를 하지 않았다. 손해를 떠안은 것이다. 정말 맛에 대한 고집이 확고하다고 할 수 있다.
밥알이 들어가는 식혜인데 밥알을 따로 넣는다고?
안에 검은색은 도자기 무늬다.
고집이라고 보기엔 위에 고집들이 너무 쎄서 이번엔 식감을 위한 노력이라고 하겠다. 식혜에는 밥알이 들어간 식혜와 그렇지 않은 식혜가 있다. 밥알이 굉장히 호불호가 갈려서이다.
밥알을 빼면, 이 식혜는 밥알이 없어서 싫다고 하고. 밥알을 넣으면, 밥알을 넣어서 싫다고 하는 뭐랄까, 항상 청개구리 같은 답변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식혜다.
밥을 띄우고 걷어내는 것도 힘든 일인데 밥알을 따로 걸러 낸 다음 식감을 위해 식혀서 조금이나마 탱글하게 만든 다음에 식혜를 넣고 밥알을 따로 넣는다. 밥알의 식감을 살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실 당화가 끝난 밥알을 밥처럼 탱글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과정을 하나 더 추가한다는 것은 식혜에 진심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미묘한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여길 수 있을 정도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해썹 인증과 유기농가공식품 인증
네니아 유기농 식혜는 유기농가공식품 인증을 받았다. 더불어 설탕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산을 쓸 만큼 원재료에 신경을 썼다.
해썹 인증을 통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사항은 모두 갖췄고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는 듯하다. 어떻게 아느냐고? 제조 공장으로 직접 찾아가 보아서 알 수 있었다.
간만에 덧신도 신었다. 물론, 사진 찍은 다음 제대로 다시 신었다.
들어가기 전 몸과 마음을 깨끗히.
유기농 호박을 끓인 다음 식히고 있다. 저어서 속까지 식힌 다음 냉동한다고 한다. 호박 식혜가 되기 전의 모습인 거다.
고두밥이 아닌 압력 밥솥 밥으로 만든다.
손으로 치대고 치댄다.
가라앉히기 중인 식혜 아직은 최종 식혜 결과물 보다 뿌옇다.
식혜, 마셔보도록 할까?
장인과 같은 고집과 정성으로 만든 식혜라고 하나 일반 소비자들은 그 정성을 알기 어렵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결국 맛이다. 그러면 최근 소비자들의 원하는 맛은 뭘까? 바로 텁텁하지 않은 맛과 설탕을 적게 쓰는 그런 맛이다.
최근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저당이 열풍이 되었고 그래서 끈적하고 묵직한 단맛보다는 조금 더 가볍고 산뜻한 단맛이 대세가 되었다. 물론, 네니아 전통 식혜는 처음부터 설탕을 많이 쓰지 않았기에, 이 대세에 어울릴 만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호박 식혜
무슨 맛이냐면, 들어간 설탕에 비해 단맛이 확 전해져오면서 뒷맛이 끈적거리지 않고 깔끔하다. 밥알은 아주 탱글하다고 할 수 없지만, 다른 식혜보다는 조금 탱글한 맛이 느껴지고 불호보다는 호에 가까운 맛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식혜의 맛이라고 할 수 있는 엿기름 당화한 맛도 진하게 느껴졌다. 분명 깔끔한데 가볍지 않은 맛이 전해져서 맛있는 식혜라고 부를 수 있었다. 또한 윗물만으로 식혜를 만든 덕분에 회색빛 대신 조금 더 맑은 색이라 눈으로 보기에도 즐거웠다.
전통 식혜를 찾는다면, 네니아 전통 식혜를 추천한다.
방부제를 넣지 않고 만들어 병입한 다음 급랭해서 보내는 식혜이니만큼 냉동 보관이 필수인 단점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유기농 재료만으로 고집스럽고 고생스럽게 만들어 낸 식혜는 그 맛이 가볍지 않고 입에 착 달라붙는 전통 식혜이다.
손으로 치대서 만든 식혜, 윗물만 쓰는 식혜, 깔끔하지만 가볍지 않은 맛의 식혜인 네니아 전통 식혜. 밥알을 싫어하지 않은 분이라면, 강력하게 추천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