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마켓 락기
20세기의 겨울 풍경 중 기억나는 하나는 리어카에 철제 통을 얹고 군고구마 파는 사람들이다. 그 앞을 지나가다 보면 배가 고파지는 냄새도 냄새지만, 대체 어떻게 구웠는지 흉내 내기 어려운 맛을 냈다는 거다. 시골에서 따라 해 본다고 나무로 불 피운 자리에 구워보았지만, 그 맛이 나질 않더라. 역시는 역시구나라며 기억 속에 저장만 해놓았다.
21세기에 접어들고 길거리 음식으로 군고구마는 많이 사라졌다. 물론 아직 간간이 보이긴 하지만, 에어프라이어가 나오고 전자 오븐도 나오게 되면서 더욱 입지가 줄어들었다.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은 고구마
20세기에 군고구마 많이 접했다고 했잖은가? 그래서 그런지 오랜 옛날부터 대대손손 고구마를 먹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한반도의 고구마 역사가 은근히 짧더라. 5,000년 전부터 고구마를 재배했다는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와 비슷하겠더니 생각하다가 고작 200여 년 전인 18세기에 고구마가 한반도에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게다가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재배의 박차를 가한 것도 아니다. 현재의 구황작물이란 지위와는 다르게 당시 농업 기술로는 생각보다 재배가 어려웠고 상대적으로 재배가 쉬운 감자에 밀려 재배가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20세기에 접어 들어서 그나마 본격적으로 재배되었다고 하니 생각보다 우리와 밀접하게 된 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물론 요새는 농업 기술이 좋아져 재배가 까다로운 작물의 지위는 잃고 많이 재배되고 있지만 말이다.
유기농 고구마
아무리 재배가 쉬운 작물이 되었더라도 그냥 냅둬서 잘 자라는 건 없다. 논농사, 밭농사 가리지 않고 험난한 자연과 벌레나 미생물과의 처절한 전투를 수차례 치러야만 원하는 농산물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유기농 재배라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난이도가 확 올라가기 때문이다. 농약 한 번 뿌리면 되는 일을 일일이 사람 손을 써야 한다. 대표적으로 제초제를 뿌리지 못하니 잡초를 하나하나 뽑아줘야 하는 일이 있다. 제초 해 본 사람을 알겠지만, 잡초는 뿌리까지 뽑아야 하는 무지하게 손이 많이 가는 중노동이다.
팔구농장을 운영하는 부자의 정겨운 모습. 밭이 엄청 붉어서 사진이 온통 붉어보인다.
부자(父子)가 운영하는 팔구농장은 그 힘들다는 유기농으로 고구마를 재배하고 있다. 업력도 무려 35년이나 된다. 처음 업력을 들었을 때는 고개가 갸우뚱했다. 35년이면 유기농이 크게 대두되기 전부터 유기농으로 고구마를 재배했던 거 아닌가 해서다. 무슨 사연이 있나 싶었다.
답은 부자 중 아버지인 김진원 농부께 들을 수 있었다. 과거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젊은 농부였던 시절인 60~70년대. 당시 농약이 나오기 시작하고 효과가 혁신적이어서 농약을 들처 메고 밭에 신나게 뿌렸더랬다. 하루 종일 농약 뿌리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주변 사람들과 부모님이 왜 그렇게 비틀거리냐고 화들짝 놀라 다가왔다고 한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지만, 많이 비틀거리고 힘이 빠진 모습, 흔히 말하는 농약 중독에 걸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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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김진원 농부님은 걱정이 많아졌다고 했다. 사람에게 이렇게 안 좋은 농약을 작물과 밭에 뿌리는 게 맞는가에 대한 걱정. 오랜 고민 끝에 농약을 뿌리지 않고 농사를 짓는 법을 찾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유기농이란 말조차 생소할 때부터 자신이 직접 겪은 일로 인해 시작한 일인 거다.
농장 취재를 하다 보면, 오래 농사를 지은 농부들에게 흔히 듣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농약 중독이다. 그래서 다들 걸리는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리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지독한 기억 중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요새 농약과 과거 농약은 많은 차이가 있고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그 기억을 쉽사리 없애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딛고 유기농 농사를 관철하게 하기도 한다. 역시나 김진원 농부님에게도 굉장히 지독한 기억 중 하나였던 거다.
전남 무안의 붉은 황토밭
색 보정을 한 게 아니라 밝기만 조절한 거다. 날이 흐려서 그런가 더욹 불게 찍혔다.
농약을 치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한 지 35년이나 된 땅이다. 본인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다른 곳보다 유독 더 붉다고 느껴진다. 농약을 뿌리지 않는 땅이라는 생각이 드니 손으로 만져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고구마 밭이라 손으로 바로 만져보았다.
밭 양쪽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해풍이 부는 곳이란 것. 해풍에는 각종 염분과 미네랄이 포함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바다와 인접한 곳에서 재배하기 힘든 작물과 용이한 작물로 나눠지며, 고구마는 후자에 속한다. 그래서 해풍으로 인한 병충해가 적다는 말도 있으며, 각종 미네랄 덕분에 잘 자란다는 말도 있다. 전라도에서는 해풍과 작물의 상관관계를 지속해서 연구중에 있다.
휴지기라 그런지 더더욱 붉은 느낌이다.
고구마는 대략 120~150일 정도 지나야 재배가 가능할 정도로 생각보다 오랜 생육 기간을 가진다. 그리고 생육 온도도 15~28℃에서 자란다곤 하지만, 왕성하게 자라는 온도는 30~35℃ 로 꽤 더워야 맛이 좋아진다. 땅에 물 빠짐이 좋아야 한다. 고구마는 뿌리를 먹는 거라 물 빠짐이 좋지 않으면 크기도 작아지고 작황도 나빠지기 때문이다.
빛과 날씨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붉게 보인다.
무안의 기온은 한반도 남쪽에 위치해 서울보다는 확실히 온화한 기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약간 기울어진 황토밭이라 물 빠짐 또한 좋아 고구마가 잘 자란다.
호박고구마와 베니하루카
호박고구마!! 호박고구마!!
요건 한입 베니하루카라고 아주 작은 거고, 큼직한 것은 너무 높게 쌓여 있어 찍지 못했다.
팔구 농장의 고구마는 호박 고구마와 베니하루카다. 호박 고구마의 품종은 안노베니, 베니하루카는 말 그대로 베니하루카가 품종이다. 호박고구마는 속이 노랗고 호박 맛이 도는 품종의 통칭이라 품종까지 세세히 알 필요 까지는 없고 베니하루카는 어쩌다 보니 품종 이름이 상품명이 된 케이스인데, 단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또 많이 들어본 말이 물고구마 밤고구일 거다. 그런데 물고구마 밤고구마는 품종 이름이 아니다. 본인도 많이 헷갈렸는데, 이 둘은 숙성 기간에 따라 달라지는 점질이라는 거다. 막 재배한 고구마는 전분이 많아 퍽퍽한 식감을 가지며, 물고구마는 숙성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전분이 당분으로 변하여 말랑해진다는 것이다. 다들 아실 것 같지만, 본인이 헷갈려서 한 번 적어보았다.
고구마 탄산 없이 먹어보기
고구마를 먹는 방법은 어마어마하게 많다. 쪄먹거나 구워 먹거나 가루를 만들어 타 먹거나 죽으로 만들어 먹거나. 말 그대로 각양각색으로 먹는다. 그렇기에 이것저것 시도해서 알려드릴 엄두가 나질 않는다.
본인, 고민 끝에 근본 중의 근본인 쪄먹기와 구워 먹기를 해보기로 하였다. 구워 먹기 또한 진짜 장작으로 할 수는 없으니 전기 오븐을 이용하기로 했다.
수분이 촉촉하게 베어 들어가 있다. 먹으면 퍽퍽하지 않고 적당한 물기와 단맛이 골고루 퍼진다. 물론 수분이 들어간 만큼 맛이 진하지는 않지만, 수분 촉촉 고구마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수분이 많이 날아간 모습이다. 수분이 날아간 만큼 퍽퍽한 식감이다. 하지만 그만큼 맛의 응축이 일어나 고구마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단맛도 더 잘 느껴진다.
먹는 이야기만 썼는데, 고구마는 먹는 방법만큼이나 보관 방법이 중요하다. 뿌리 작물이라 수확을 한 다음에도 살아있기 때문에 냉장실에 두지 말고 상온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점차 단맛도 올라오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산지 직송 유기농 고구마의 매력
유기농이라서 더 맛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맛있는 고구마가 유기농이라면 굉장한 이점이 된다. 무안의 팔구농장 고구마는 무척 맛있고 유기농이다. 고구마밭에서는 다른 작물을 재배하지 않고 고구마만을 재배하는 뚝심도 있다. 생육기간이 120일이 지나고 재배하면 나머지 기간은 관리만 계속한다. 고구마에 진심인 셈이다.
좋은 땅에서 기른 유기농 고구마는 산지에서 집으로 바로 배송된다. 그렇다고 따서 바로 보낸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확을 한 번에 해서 보관하기 때문에 숙성이 잘 된 고구마가 집까지 배송되는 셈이다. 여기서 이점이라면 고구마가 이동을 많이 하지 않아서 작물이 받는 스트레스가 적다는 거다.
땅관리, 심기에 수확, 숙성까지 한큐에 다 하는 농장에서 직배송되는 맛있는 무안의 유기농 고구마. 드셔보시길 바란다.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