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마켓 퍼그맨
사실 검증이 필요 없는 그 이름
소설 좀 읽는다는 사람 집에는 꽂혀있기 마련인 소설이 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위의 책들은 적지 않은 분량의 대하소설임에도 불구, 전집이 꽂혀있는 책장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이 소설들이 꽂힌 책장을 자주 목격하며 자라온 덕인지 내 머릿속에 '조정래'는 '전설'과 유사한 의미로 굳어진 이름이다.
그런데 그 분의 신작을 입점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일하는 회사의 마켓에.
이번엔 돈에 대한 고찰
이번 작품은 '황금종이', 즉, '돈'을 둘러싼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돈은 인류가 가치의 척도로 삼기 시작한 이래, 여러 창작물의 주제가 되어온 소재지만 여전히 우리가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되려 자본 증식 수단이 다양해지며, 돈은 더 많은 돈을 낳을 수 있게 되었다. 돈이 돈을 만드는 속도가 노동으로 버는 속도를 아득히 상회하면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버렸다. 빈부격차는 늘어만 가는데 SNS 등을 통해 이를 과시하는 경향까지 생긴 통에 더더욱 돈에 대한 욕망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 그것이 오늘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를 다룬 대하 소설들과 '정글만리'로 2000년대 초 중국을 '풀꽃도 꽃이다'로 교육을, '천년의 질문'으로 재벌, 사법 권력을 다루신 바 있는 작가님은 과연 '돈'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셨을까?
같은 황금만능주의라도 세대에 따라 그것이 나타나는 양상,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돈만 밝히는 사람을 '수전노', '구두쇠' 등으로 부르거나 '돈독 올랐다'라며 비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현재는 플렉스라며 돈 뿌리고 고가의 사치품을 소비하는 것을 동경하는 분위기가 있다. 똑같이 '돈'에 엮인 주제라도 시대에 따라 그리고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창작물이 나오고 해석될 수 있는 이유겠다.
책을 읽은 느낌
'황금종이'는 드물게 정의로움을 잃지 않으려는 변호사 이태하가 주인공이다. 그런 그가 '돈'에 얽힌 다양한 사건들을 맡게 되면서 고민에 빠지는 이야기다.
옴니버스 형식의 장점은 한 가지 소재를 둘러싼 다수의 사건을 보여주면서 거기 엮인 인간들의 모습을 폭 넓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끊어 읽어도 부담 없다는 것이다. 웹 소설이나 호흡이 빠른 모바일 콘텐츠에 익숙해져버린 상태라면 이 소설의, 1, 2권 합쳐서 600페이지를 넘기는 묵직한 분량이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으나, 시간을 두고 이태하 변호사가 맡는 사건 하나하나를 읽어나가신다고 생각하시면 큰 어려움 없이 책장이 넘어가는 것을 경험하실 수 있다.
이렇게 시간을 두고 주제를 둘러싼 여러가지 사고 방식을 마주하다보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황금종이'를 대하던 나의 방식을 객관화된 상태에서 바라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게 된다. 요즘 특히 돈독 올라 살던 나에게 장고의 기회를 주는 책이었달까.
마치며
어느덧 여든을 넘기셨지만 아직도 하루에 원고지 15~20매 분량을 쓰고 계시다는 조정래 선생님이다. 원래는 나이가 들어 하루 5매씩 쓰겠다 다짐하셨지만, '황금종이'를 쓰다보니 속도가 붙어 그렇게 되셨단다.
유명 온라인 서점과 비교해 뭐 하나 나은 점 없는 딴지마켓이다. 하지만 무한한 존경심을 담아 입점하겠다. 가능한 많은 딴지스들의 응원을 모아드리고 싶다. 차기작을 탈고해내시는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