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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 테이블 위의 전쟁-표지(앞면).jpg

 

 조약을 보면 국제정치가 보인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은 굉장히 생경하기만 하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제2차 세계 대전)은 알지만,

그 시발점이 되고 훗날 태평양전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조약이 어떻게 성립되었으며,

또 이 조약 때문에 일본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감’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눈에 보이는 결과인 전쟁에만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늘 말하지만, 전쟁은 어디까지나 최종적인 외교 수단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대를 주름잡던 최고의 열강들이 모여 군축 협상을 하고,

저마다의 계산에 따라 서로의 패를 맞춰보던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은 또 다른 전쟁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고리타분한 테이블 위의 전쟁이지만,

이 협상 덕분에 그때까지 일어난 그 어느 해전에서보다 더 많은 전함이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가 국제정치를 알아야 하고,

국가 간의 외교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보여준 선례다.                    

 

-머리말 중에서

“열강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워싱턴 해군 군축 회담”

 

“우리도 전함을 만들지 않고 다른 나라도 전함을 만들지 않는다면 건함建艦 경쟁이 일어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건함 경쟁이 없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전 세계는 평화로워질 것이다”라는 미국 하딩 대통령의 말은 열강의 이해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재정이 바닥난 영국은 더는 건함 경쟁에 뛰어들 여력이 없었다.

미국은 무리하면 건함 경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었으나 전통적으로 고수해온 고립주의 노선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이 걸렸다.

한편 제1차 세계 대전으로 경제 불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일본은 군부의 반발 등 내부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열강의 압박으로 군축 회담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제1차 세계 대전 후 오랜만에 맞은 평화와 민주주의의 훈풍에

힘입어 군부의 입김에서 최대한 벗어나려고 노력하던 중이었다.

이런 차에 1921년에 열린 워싱턴 군축 회담은 재정의 32퍼센트를 차지하는 건함 예산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메이지 유신 이후 확대일로를 걸어온 군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미국은 워싱턴 해군 군축 회담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획득한 영토의 조정과 영일 동맹의 파기를 큰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전자는 중국과 만주에서 이권을 빼앗기는 것이기에 일본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었지만, 세계의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후자는 미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이 성립하기 위한 핵심 사항이었다.

특히 일본이 러일전쟁 후 미국을 가상 적국으로 상정해 해군을 증강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일본과 영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미국에 위험 요소로 인식되었다. 재정이 바닥난 영국 입장에서도 식민지 유지를 위해 건함 경쟁은 굉장한 부담이었다.

만일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동맹국답게 영국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면 영일 동맹이 쉽게 파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유럽 본토에 참전을 회피하고 구독일령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자신의 이권만 챙겼다.

따라서 영국은 영일 동맹을 파기하여 전쟁 국가 일본이 앞으로 저지를지도 모르는 전쟁에 휘말리게 될 싹을 미리 제거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테이블 위의 해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세계 어떤 해전에서도 볼 수 없던 전과가 테이블 위의 문서 한 장으로 끝났다.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으로 수십 척의 전함과 순양전함이 줄줄이 폐함됐고, 전함으로 건조 중이던 배들도 항공모함으로 설계가 변경됐다.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가 각각 5:5:3:1.75:1.75의 비율로 전력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이 비율은 5 : 5 : 3 : 1.67 : 1.67로 재조정되었고 1921년 11월 12일부터 모든 신규 주력함의 신규 건조가 10년 동안

중단되는 ‘해군의 휴일’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세계는 오랜만에 평화를 누릴 수 있었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일본 국민은

외국에서 불어온 자유주의 사조와 민주주의의 열풍을 맞을 수 있었다.

 

영일 동맹을 명분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일본은 손쉽게 중국 내 독일 조차지와 남태평양 제해권을 확보했으며

전쟁 물자를 수출하여 채무국에서 채권국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일본은 승전국들이 모인 파리 강화 회의에서 승전국 자격으로

참석하여 중국과 남태평양 제도에 대한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여 인정받았다. 그 후 열강은 일본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은 일본에 대한 경계를 드러낸 정치적 견제였다. 워싱턴 체제를 통해 일본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중국을 위협하여

빼앗은 권익을 일부 되돌려줘야 했다. 그와 함께 이뤄진 영일 동맹의 파기는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는 든든한 뒷배였던

영국이 일본을 떠나는 계기가 됐다.

 

“국제정치에서 의리는 망상에 불과하다”

 

서양을 흉내 내던 일본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서구 열강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해 있었다.

위협을 느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은 일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혈맹이라던 영국도 일본을 자신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했다. 국제사회의 냉정함일까? 힘이 세졌다고 일본이 너무 설쳤기 때문일까?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으로,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군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자국의 이익’ 앞에서는 냉혹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국제정치에서 의리를 찾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워싱턴 회담은 국가의 이익이 국력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운 세계 정치 체계를 완성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워싱턴에 모인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이 세계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유럽 중심으로 돌아가던 국제정치가 미국과 일본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서구 열강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이권에 대한 관심과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사실이다.

 

 

《조약, 테이블 위의 전쟁》은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서 제1차 세계 대전 후 세계 최고의 열강들이 모여 군축협상을 하며,

저마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서로의 패를 맞춰보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으로 세계는 10년 동안

평화를 얻었으며 전쟁 국가 일본도 막간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세계 3위의 해군력을 갖춘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영국으로부터 홀로서기를 강요받았다.

 

이처럼 외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벌이는 총성 없는 싸움이다.

테이블 위의 전쟁이었던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은 실제로 어느 해전보다 많은 전함을 사라지게 했고 전쟁으로 찌든 세계에 잠깐의 평화를 선사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국제정치에서 외교전은 일상이다.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서 외교 현장의 모습을 무감각하게 보고

있는 우리가 《조약, 테이블 위의 전쟁》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책 속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새로운 강자를 목도하게 되었다. 그동안 국제 사회의 절대 강자였던 영국은 쇠락의 징조를 보였고,

신흥 강자였던 독일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승자였지만 프랑스 역시 깊은 상처 속에 신음해야 했다.

제국의 몰락이라고 해야 할까? 그동안 세계사의 중심에 서 있던 유럽이 몰락한 것이다.

그 빈자리를 치고 올라온 것이 신세계의 두 나라, 미국과 일본이었다.               -58p-

 

 

미국을 공격할 만한 힘이 있는 국가들은 대서양과 태평양 밖에 있었다. 미국을 침공하려면 먼저 대서양과 태평양이란 벽을 넘어야 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야기가 달라졌다.

세계의 강자로 급부상한 미국에 대적할 만한 힘을 지닌 두 국가가 대서양과 태평양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둘은 모두 섬나라였고 해군 강국이었다. 만약 이들이 러일전쟁 때처럼 힘을 합쳐 대서양과 태평양에서 밀고 들어온다면 미국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62p-

 

 

대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국제 정세는 우드로 윌슨이 조직한 국제연맹을 중심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하지만

(교과서에 그렇게 나오니까) 1922년에 체결된 워싱턴 체제가 그 기반이었다. 패권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 중이었고,

그사이 중국 대륙의 이권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셈법이 바탕에 깔린 ‘구속력’ 있는 체제는 국제연맹이 아니라 워싱턴 체제였다.                 -110p-

 

 

워싱턴 체제가 붕괴된 지 3년 만에 인류는 제2차 세계 대전이란 미증유의 대전쟁을 겪었다.

워싱턴 체제가 잡아챈 고삐의 위력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만주사변으로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워싱턴 체제에서마저 이탈한 일본은 이제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전쟁의 길로 내달렸다.

1937년 태평양전쟁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이후 9년간 일본은 중국과 미국이란 늪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164p-

 

  

검증필증
제품상세정보

 

 

▌차례

 

머리말 ― 또 다른 전쟁,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01 ― 드레드노트의 탄생

 

      피셔 제독의 등장

 

      탄생의 서막

 

 

02 ― 제1차 세계 대전, 뒤바뀐 국제정치 주도권

 

       건함 경쟁 

 

      제1차 세계 대전과 일본

 

      서구의 몰락과 일본의 부상

 

 

03 ― 일본의 데모크라시

 

      변화의 조짐? 

 

      지멘스 사건

 

      짧았던 다이쇼 데모크라시

 

 

04 최악의 대통령, 최고의 조약을 성사시키다

 

      미국이 움직이다

 

      모든 걸 쥐어짜낸 일본, 더 쥐어짜낼 게 없던 영국

 

      순진한, 너무도 순진한 미국

 

 

05 각자의 계산 I

 

      하나의 목적 아래 뭉치다

 

      영일 동맹의 위기

 

      일본이 제국주의로 갈 수 있었던 열쇠, 영일 동맹

 

 

06 각자의 계산 II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종막

 

      일본 해군의 주장

 

      인류 최대·최고의 군축 조약

 

      실수인가 고집인가

 

 

07 워싱턴 체제의 승자, 일본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의 정치적 의미

 

      군축과 세계정세의 변화

 

 

08 8년 만의 재회, 런던 군축 조약

 

      다시 등장한 대미 7할론

 

      군사 혁명의 시작

 

 

09 일본은 어떻게 실패했나 I

 

 

10 일본은 어떻게 실패했나 II

 

      쓰시마 해전, 그 찬란했던 기억

 

      일본 스스로가 부정한 점감요격작전

 

 

11 만주국은 어떻게 탄생했나

 

      군이 움직이다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다

 

      마치며

 

 

외전 국제정치의 본질과 마지노선

 

      01-군사 역사상 가장 멍청한 짓

 

      02-제2차 세계 대전의 불씨

 

      03-독일에 대한 압박과 히틀러의 등장

 

      04-실패한 외교, 히틀러를 완성시키다

 

      05-국제정치의 본질

 

▌저자

 

 

이성주

 

2006년 서점가를 뜨겁게 달군 《엽기 조선왕조실록》은 역사 대중서 읽기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

권위적인 역사 해석을 거부하는 저자는 거침없는 입담과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역사는 고루하지도, 현실과 괴리되어 있지도 않으며,

언제나 현실과 함께 있다”는 자신의 신조를 실천하면서 포스코의 ‘포레카 창의 놀이방’,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에서 재미와 유익,

영감을 주는 역사 강사로 활동 중이다.

 

저자의 다른 작품으로는 《왕들의 부부싸움》《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실록》《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사 진풍경》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계사 진풍경》《발칙한 조선인물실록》《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어메이징 조선 랭킹 실록》

《글이 돈이 되는 기적》《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등이 있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전시 기획자이며 독창적 글쓰기로 문화 전반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문화 콘텐츠 창작자로도 유명하다. 《딴지일보》에서 전문가적 지식으로 무장한 군사 분야 논객으로 활동 중이며, 다양한 매체와 강연을 통해 지적 쾌락을 만족시키는 역사 칼럼니스트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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