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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비틀거리며 불의한 권력과 맞장떴다!”


내 청춘을 관통한, 지워지지 않는 이름… 천영초


 

<시사저널><오마이뉴스> 편집장을 지낸 언론인이자, 대한민국에 제주 올레길 열풍을 일으킨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1970년대 말, 한반도의 끝자락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생활을 하던 여대생 서명숙은 돌연 감옥에 갇힌다. ‘천영초’라는 여인과 함께. 이 책은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저자뿐만 아니라 당시 긴급조치 세대 대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실존인물 ‘천영초’에 대한 기록이다.


영초언니는 서명숙에게 “담배를 처음 소개해준 ‘나쁜 언니’였고, 이 사회의 모순에 눈뜨게 해준 ‘사회적 스승’이었고, 행동하는 양심이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준 ‘지식인의 모델’”이었다. 천영초는 “당시 운동권의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였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태일’처럼 깊은 화인을 남긴 인물이었지만, 오늘날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 영초언니는 불의의 사고로 말과 기억을 잃어버렸고, 시대는 그녀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천영초와 서명숙, 두 여성의 젊은 날에는 박정희 유신정권 수립과 긴급조치 발동, 동일방직 노조 똥물 사건, 박정희 암살,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촘촘하게 맞물려 있다. 저자는 언론인 출신 특유의 집요하고도 유려한 글쓰기로 독재정권하 대학생들의 일상과 심리적 풍경을 섬세하게 복원해나가며, 한 여자가 어떻게 시대를 감당하고 몸을 갈아서 민주화에 헌신했는가를, 그리고 그 폭압적인 야만의 시대에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일을 겪었는가를, 그 결과 어떻게 망가져갔는가를 증언한다. 그 과정에서 나어린 여대생들에게 당대의 고문형사들이 가한 소름 끼치는 협박과 고문들, 긴급조치 9호 시대 여자 정치범들이 수감된 감옥 안의 풍경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한때 서명숙에게 영초언니를 회상하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었고, 식은땀에 젖어 한밤중에도 소스라치며 일어나게 만드는 처절한 악몽이었다. 그래서 몇 번인가 이 원고를 쓰다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몇 달 전 부패한 박근혜 정권 뒤에 숨어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이 몰려든 취재진들 앞에서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며 억울하다고 외친 순간, 그는 다시 영초언니를 떠올렸고 맹렬하게 원고를 집필해 마침내 ‘천영초’라는 여성의 초상을 완성해냈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디쯤 와 있는가. 진짜 ‘억울’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역사가 호명해야 할 이름은 누구인가. 서명숙의 펜 끝에서 되살아난 영초언니가 우리에게 묻는다.


 

다시 영초언니를 떠올린 건, 오랜 세월 밀쳐두었던 언니에 대한 글을 마무리지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순전히 그 여자 최순실 때문이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의 한 장면이 뒷덜미를 낚아채듯 나를 그 시절로 도로 데려다놓았습니다. 최순실은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차고 호송차에서 내려 특검조사를 받으러 가는 도중에 몰려드는 취재진에게 외쳤습니다. “여기는 더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너무 억울해요!”

순간 40여 년 전, 호송차에서 내리면서 “민주주의 쟁취, 독재 타도!”를 외치고는 곧장 교도관에게 입이 틀어막혀 발버둥치던 한 여자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천영초가 외치는 민주주의, 최순실이 외치는 민주주의! 40여 년의 세월을 넘어 똑같이 수의를 입은, 그러나 너무도 다른 생을 살았던 두 여자가 ‘민주주의’라는 같은 단어를 외치는 풍경이 지독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영초언니를 불러내서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지독하게 고통스러웠음에도 내 생애 힘든 시절마다 주둔군처럼 다시 호명되는 그때 그 시절의 기록이자,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한 여성에게 바치는 사랑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듣고 그녀가 조각난 기억의 파편을 온전히 맞추어내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_‘프롤로그_ 바람이 몹시 불던 어떤 날’ 중에서

 



‘혼자만 행복하면 나쁜 놈이 되는 것 같았던 시절’


거기, 빨갱이도 데모꾼도 아닌 

흔들리고 흐느끼면서도 한길로 ‘달려들어가는’ 청춘들이 있었다


 서명숙이 영초언니를 만난 것은 대학에 입학해 고대신문 기자로 활동하던 때였다. 한반도의 변방 제주도에서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동경하던 열렬한 ‘박정희 키드’로 자라난 ‘나’는, 영초언니를 만나고 학생기자와 야학교사로 활동하며 이 땅의 현실과 유신정권의 맨얼굴을 목격하고는 충격에 빠진다.

 

처음 입학한 1976년만 해도 새내기 눈에 비친 교정은 불타는 듯한 분홍빛 진달래와 샛노란 개나리가 어우러져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가 흐른 뒤 1978년 봄 교정에 핀 진달래는 더이상 단순한 꽃이 아니었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이라는 <진달래>의 가사처럼 핏빛 진달래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전태일 열사, 사전 검속으로 잡혀가서 다시는 학교로 돌아오지 못한 선배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은유적 상징이었다. 꽃이 더이상 꽃으로만 보이지 않는 세상은 끔찍했다.

_3장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에서

 

영초언니와 ‘나’는 자취방에서 땀과 분노, 열정으로 뒤범벅이 된 채 등사기를 밀면서 독재정권의 부당성을 고발하고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을 담은 유인물들을 찍어낸다. 마치 독일의 나치 정권에 저항하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속 비밀결사체 ‘백장미단’처럼. 영초언니와 나는 각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짭새’들의 눈을 피해 유인물을 뿌린다.


그러나 서명숙이 그리는 영초언니와 친구들의 모습은, 지금껏 숱한 작품들에서 다루어진 운동권 학생들의 모습과는 어딘가 다르다. 강철 같은 신념으로 구국의 대오를 형성하고,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채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투사들은 없다. 서명숙은 그저 거기 ‘사람’이 있었노라고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들은 당시 언론이 묘사한 것처럼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나 데모꾼이 아니었다. 그들은 두려웠고, 아팠으며, 이 싸움의 대가로 자신이 버려야만 하는 것들에 흐느끼고 흔들리고 허물어지던, 갓 스물 언저리의 젊은이들이었다.  


 다만 그들은 ‘나에게 노동법을 알려줄 대학생 친구가 한 명만 있었다면…’ 소원했던 전태일의 마지막 외침을 잊지 못했고, ‘을 중의 을’ 공장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똥물’을 뒤집어써야 하는 참혹한 노동현실에 가슴 아파했으며, 그들보다 약간 더 나은 환경에 태어난 것뿐인데도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예비지식인 대접을 받는 것에 한없이 부끄러워했다. 슬프고 미안한 것들을 외면하지 못한 죄, 부끄럽고 분노해야 할 것들에 양심이 시키는 대로 저항한 죄로, 그들은 강의실과 도서관 대신 눈이 가려진 채 고문실로, 감옥으로 가야 했다.

 최루탄과 곤봉과 발길질이 난무하는 처절한 시위 장면들 사이사이, 수줍게 등장하는 서명숙과 엄주웅의 연애담은 그래서 더욱 애처롭고 애절하다. 사랑하고 웃고 누리기도 전에, 그들은 시대에 청춘을 차압당했다.

 

 9.14시위 이후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딘가를 향해서 비장하게 걸어가는 자의 뒷모습, 주위 사람들과의 인연을 모질게 끊어내려는 안간힘 같은 게 느껴졌다. 지난주에 야학을 떠나겠다고 선언할 때도 그랬다.

“언제 할 건데?”

“곧……”

그가 무너지듯 내 가슴에 안겨왔다. 그리고 쥐어짜듯 내뱉었다.

“명숙아,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가 꺼억꺼억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등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엄주웅이 사랑한 대상은 ‘서명숙’이라는 특정한 여학생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암울한 시대에 불의한 국가권력과 감히 맞장을 뜨려는 자가 끊어내야 하는, 포기해야 하는, 남겨두고 떠나야만 하는, 그 모든 그리운 것들의 한 조각이었는지도 모른다.

_4장 ‘사람은 가고, 사랑은 오고’ 중에서

 

 

‘우리는 꽃도, 액세서리도 아니다!’


독재정권과 남성중심주의에 맞선 걸크러시 여대생들의 모임 ‘가라열’


 이 책에서 서명숙이 특히 공들여 복원해낸 것은, 지금까지 민주화운동사에서 제대로 조명된 적 없던 ‘운동권 여학생들의 투쟁사’이다. 당시 고려대는 남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운동권 내에서조차 여학생들에 관해 전하는 미담이라고는 “데모할 때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돌을 날라다주거나 마실 물을 떠다주거나 피를 닦아주었다”는 등의 얘기가 고작이었다. 성차별이나 성희롱 역시 비일비재했다.


영초언니는 캠퍼스 내의 이 남성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생각하고 토론하고 저항하는 여학생들만의 모임을 조직한 깨어 있는 여성이었다. 영초언니의 자취방을 본거지 삼아 그 어떤 이념과 집단의 논리에도 사로잡히지 않은 채 자유롭게 공부와 토론과 투쟁을 이어간 이 선구적인 여대생들의 클럽은, 이름하여 ‘가라열’.

 

영초언니가 좌중의 이야기를 듣다가 제안했다.

“그럼 여자들끼리 모여서 책도 읽고 토론도 하는 모임을 만들면 어때? 우리끼리!”

“우리 열 명이니 가라열이 어떨까요? 가라! 여성 해방의 길로, 가라! 독재 타도의 길로, 가라! 노동자 해방의 길로! 뭐든 다 되잖아요?”(…)

가라열은 남자들의 제국 고대 사회에서 유일한 해방구였고, 꽉 막힌 유신체제에서 가느다랗게 열린 숨구멍이었고, 우리 여자들의 대안학교였다. 그 시절은 술자리에서 정부를 비판했다가 신고당해서 감옥에 잡혀들어가는 이른바 ‘막걸리 긴조’법이 지배하던 무도한 시절이었다. 여대생들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 남학생들이 쫓아와서 충고를 하거나 심지어는 때리기까지 하던 ‘웃기는 시절’이기도 했다. 그 모든 간섭과 억압은 지금처럼 ‘여혐’으로 비난받기보다는 ‘기사도’로 미화되거나 포장되었다. 우리는 가라열에서 스스로를 존중하는 법을,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여자들끼리의 수다도 얼마든지 진지한 토론이 될 수 있음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7년 그해 겨울, 기록적인 한파가 한반도를 덮쳤다. 그러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각자 섬처럼 외로웠던 여자들끼리 모여서 추운 날 서로 깃털을 부비는 작은 새들처럼 체온을 함께 나누었기에, 우리는 정신적으로는 따뜻했다.

_‘2장 내 인생에 뛰어든 나쁜 언니’ 중에서

 


‘가라열’의 멤버 이혜자는 고려대 내에 상주하며 학생들을 사찰하고 이간질시키고 회유하던 짭새들의 상주공간을 때려부순다. 긴급조치 시대 동토의 왕국처럼 얼어붙었던 대학가에서 여학생 한 명이 독야청청 나서 경찰초소를 직접 까부순 이 ‘고려대 9.14 시위’ 이후,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고 생각한 경찰은 이혜자에게 하혈이 멈추지 않을 정도의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며 분풀이를 했다.

‘가라열’이 학내 시위를 주도한 핵심 멤버의 구속으로 뿔뿔이 흩어진 후, 본격적으로 ‘여성문제를 연구한다’는 취지로 조직된 ‘여연’ 역시 시대를 한참 앞서간 걸출한 페미니스트들의 모임이었다.

그런데 학교 설립자의 친일행적까지도 과감하게 비판하던 이 당찬 여대생들에게 난데없는 환란이 닥친다. 어느 날, 옆 테이블에서 술을 먹던 남학생들이 ‘여연’ 멤버들에게 누런 막걸리 한 사발을 끼얹은 것이다.  

 

“니들이 뭔데 감히 김성수 선생을 씹고 지랄이야? 여자들끼리 모여서 술 먹고 담배나 피우는 주제에!”

좌중이 술렁였다. 정작 가장 침착한 태도를 보인 건 당사자인 순자였다. 그녀는 자기 앞에 놓인 술잔에 막걸리를 따르더니, 옆 테이블로 조용히 다가가서 술잔을 던진 남학생 앞에 섰다. 남학생은 순자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 당황한 눈치였다. 나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순자는 그의 머리 위로 천천히 막걸리를 들이부었다. 마치 거룩한 세례의식 같았다. 잠시 무거운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곧이어 일대 활극이 벌어졌다. 불시에 습격을 당한 남학생은 씩씩거리면서 테이블을 둘러엎고 우리 자리로 튕기듯 뛰어들어와서 순자를 거칠게 밀쳤다. 여연 멤버들은 소리를 지르고, 울고, 남학생의 허리춤을 붙들고……

_‘4장 사람은 가고, 사랑은 오고’ 중에서

 

  

운동권 여대생, 만삭의 YH노조 지부장, 강남 낙찰계 사기꾼,

소녀 장발장들, 김재규 장군의 전 부관 부인이 한데 잡혀 있던 그곳…


긴급조치 시대 여자 감옥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이토록 활달하고 당차게 독재정권과 싸우던 영초언니와 나는 1979년 4.19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돌연 연행된다. 이른바 ‘산천초목 사건’으로 명명된 독재정권의 기획수사 아래, 영초언니는 남영동 대공분실에, 나는 서울 변두리의 모텔 하나를 통째로 빌려 각 방을 밀실로 만든 곳에 갇힌다. 지옥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이 장면에 이르면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기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처절한 폭력의 장면들이 가슴을 친다. 당시 형사들은 신체적인 고문을 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감금된 여학생들로 하여금 친구와 선후배들을 배신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과 정보를 망라해 “가슴을 후벼파고 들쑤”셨다. 결국 그 밀실에서 나는 자살을 기도한다.


그들은 입만 열면 천영초가 얼마나 나쁜 년이고 악질인지, 순진한 시골뜨기인 나를 얼마나 나쁜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지를 열거하기에 바빴다. 내가 듣기 싫어서 도리질 치면 그들은 “네가 이러는 거야말로 천영초에게 세뇌됐기 때문”이라면서 내 순진함을 비웃고 조롱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마타도어는 남녀 문제였다. 그들은 영초언니가 빨갱이 혁명을 위해 남자들을 의도적으로 꼬셨고 심지어는 몸을 주는 일마저 마다하지 않았다고 내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언니가 몸을 준 대상으로 거론된 명단에는 내가 잘 아는 선후배가 여럿 있었다. (…)

하루는 어느 형사가 마구 흔들리는 내게 진짜 비밀을 알려주겠다면서 속삭였다.

“천영초가 니 애인 엄주웅하고도 잤대. 데모하라고 꼬시려고. 놀랐지? 영초가 그런 여자야. 후배 애인까지도 따먹는!”

_‘5장 지옥에서 보낸 한철’ 중에서

 

이후 영초언니와 나는 성동구치소로 나란히 입감되었다. 영초언니는 독방에, 나는 사기간통방의 막내로 들어간다. 신참이기에 변소 바로 옆에 모로 누워 ‘칼잠’을 자며 시작한 감옥생활은 여름엔 윗옷을 벗고 젖무덤을 내놓고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좁은 공간 안에 암내, 땀내, 생리혈 냄새가 뒤섞여 악취가 머리를 찌르는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원래 다니던 대학에서는 최종판결이 나기도 전에 나를 제적시켰고, ‘없는 자’들의 ‘국립대학’에 강제입학한 셈이었지만, 나는 그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나간다. 그곳에도 ‘사람’은 있었기에.


나보다 앞서 들어온 동갑내기 옥주는 감옥생활에 필요한 자잘한 일들을 살뜰하게 챙겨주고, 간통죄로 들어온 지압사 아줌마는 신장이 안 좋고 안색이 나쁜 내게 매일 밤 마사지를 해준다. 나는 면회 올 가족 하나 없는 ‘소녀 장발장’ 소년수들에게 내가 차입 받은 마가린이며 건빵 따위를 몰래 건네주며 그들의 미소에서 잠깐의 온기를 느끼기도 하고, 독방에 있는 영초언니와 은근하게 비둘기(쪽지)를 날리면서 위로를 받는다.


당시 천영초와 서명숙이 수감된 성동구치소에는, 훗날 박정희 유신정권의 종지부를 찍는 신호탄이 되었다고 평가받는 ‘YH무역 노조 신민당사 농성사건’의 주역 3인방도 들어왔다. ‘학생 빨갱이’가 아니라 ‘진짜 빨갱이가 온다!’는 소문에 감옥 안은 술렁이지만, 놀랍게도 그중 노조지부장 최순영은 거의 만삭의 임신부였다. 또한 서명숙의 사방(舍房)에는 김재규 장군의 충성스러운 전 부관의 부인이 수감되어 있기도 했다.  

마치 독재정권하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오려놓은 듯한 그 구치소 여사(女舍) 안에서, 나와 영초언니는 부마항쟁, 박정희 암살 등의 사건을 맞고, 마침내 출감해 ‘서울의 봄’을 맞는다.


 

우리가 잊어버리고 지워버린 사람들,

억울하게 사라져간 이들의 영혼에 바치는 곡진한 ‘해원굿’

 

 출감 후 영초언니와 영초언니의 운명의 남자 ‘정문화’는 운동권 학생들이 잇따라 ‘소시민’이 되거나 ‘배신자’가 되는 중에도 세상을 변혁하겠노라는 꿈을 끝내 접지 않았다. 영초언니는 용맹한 공수부대가 폭도들을 진압했다는 뉴스가 파다한 가운데서도 1980년 5월 18일, 그날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 확인해봐야겠다며 내 손을 끌고 광주로 향한다. 그날의 비극적인 상황을 웅변하듯 YMCA 건물 벽에는 흉터처럼 총알 자국들이 가득 박혀 있었다. 고통스러운 예감에 나는 진저리를 친다.


그러나 현실과 생활이란 잔인한 것이었다. 특히 ‘혁명’과 ‘이상’을 내려놓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더더욱. 어느 날 그토록 총기 넘치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던 영초언니가 운동권 후배들을 ‘다단계’에 끌어들이고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이 들려온다. 나는 망가져가는 영초언니를 두고 볼 수 없어 당장 만나자고 해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따져묻는다.

“부패한 집권여당을 무너뜨릴 혁명자금을 마련하려면 이 길밖에 없지 않니? 번역이나 하고 잡문이나 써서 받는 푼돈으로 언제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니?”


도리어 확신에 찬 어조로 내게 되묻는 영초언니의 대답에 나는 아연해져서 앞으로 ‘천영초’를 만날 일은 없겠구나, 생각한다.

영초언니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천영초와 정문화, 한국 현대사의 한 축을 견인한 이 빛나는 커플은 아들을 낳고 한때 평범한 행복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 아들마저 당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왕따’가 되어 고통받는다. 마침내 영초언니는 이 나라에 대한 마지막 애정을 접고 한국을 떠난다. 그리고 ‘서울대 3대 천재’로 불렸던 인물이자 운동권의 전설적인 기인이었던, 영초언니의 남편 정문화는 생의 의욕을 모두 잃어버린 듯 37킬로그램의 가벼운 몸을 이승에 남겨둔 채 숨을 거둔다.

 

“미안하다, 문화야, 정말 미안하다!”

몸부림치면서 쏟아내는 처절한 통곡보다도 그 낮은 어조의 말 한마디가 더 깊은 슬픔을 드러내는 듯해서 가슴이 저며왔다. 대체 그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엇이 미안했던 걸까. (…) 이악스럽고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너무 순수한 성정을 갖고 태어나게 해서? 머리 좋은 수재를 데모나 하도록 몰아가는 나라에 태어나게 해서? 아니면 그 모든 것이?

문화형의 영결예배에는 우리 사회의 내로라하는 명사와 정치인들이 추도사를 하고 목사님과 신부님들이 번갈아가면서 종교의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내 가슴을 두드린 추도사는 문화형 어머니의 ‘미안하다’는 한마디였다. 나 역시 문화형에게 너무도 미안했기에.  

_‘7장 1980, 수상한 ‘서울의 봄’’중에서

 


우리나라에는 민주화운동의 이력으로 명망을 얻은 이들도 있고, 그 이력을 보란듯이 배반하여 세속적인 성공을 거머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름 없는 투사’들은 독재정권하에서 청춘을 보내며 몸과 마음이 망가졌지만, 그 어떤 보상도 명예도 얻지 못한 채 세월 속에 잊혀지고 스러져갔다.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또다른 영초언니, ‘혜자언니’의 고백은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온다.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순간, 뭐라 형용하기 힘든 비참한 심경이 들더라고. 우리가 그토록 목숨 걸고 맞서 싸웠던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가 그의 딸을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다니. 우리가 젊은 날 한 그 모든 일들이 역사로부터, 국민들로부터 모욕당하고 조롱받는 느낌이랄까. 박대통령이 당선된 뒤로 나는 텔레비전 뉴스만 봐도 내상을 입는 것 같아서 한동안 뉴스조차 보지 못했어.”

_‘에필로그_ 그뒤 빛나던 청춘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중에서

 


영초언니는 역사가 잊어버리고 지워버린 그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다. 서명숙은 이 책을 통해 서럽고 억울한 그들의 영혼에 곡진한 ‘해원굿’ 한 판을 바친다.

기억을 잃고 서너 살 정도 지능의 아이가 되어버린 영초언니 대신, 그녀를 기억하고 호명하는 것은 이제 역사의 몫으로 남겨졌다. 당신의 젊은 날에도 ‘영초언니’가 있는가? 세상을 바꾸자고, 불의한 것에는 마땅히 분노하라고, 약자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자고 손을 뜨겁게 쥐어주던 영초언니와 같은 사람이 있는가? 당신 가슴속의 영초언니는 아직, 살아 있는가?  


“꽃보다 가벼운 이슬로 사라져갔던” 그 수많은 청춘들의 얼굴을 하고, 다시 살아난 영초언니가 지금 우리 곁으로 온다. 천영초, 이 이름을 기억하라. 




■이 책을 추천한 사람들


 

변방 중의 변방인 제주도의 말 ‘올레’를 표준어로 만든 사람. 그가 서명숙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안다. 그러나 서명숙이 군사독재에 맞서 줄곧 매운 글을 썼던 참언론인이었던 것은 많이 잊혀졌다. 그리고 그가 저 무시무시한 유신독재에 맞선 투사로 감옥살이까지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제 서명숙은 ‘치유의 길’ 제주올레를 만들어낸 것만큼 대단한 일을 새롭게 하고 나섰다. 예리하면서도 유려한 옛 기자의 글솜씨를 발휘하여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뿌리 찾기에 나선 것이다. 우리는 지난겨울의 매서운 밤추위를 무릅쓰며 1700만 개의 촛불을 밝혀 끝내 민주시민혁명을 이룩해냈다. 그 줄기찬 협동과 용기와 인내는 어디서 온 것인가. 그 뿌리는 바로 유신독재 투쟁으로 이어져 있다. 우리가 더 온전한 ‘민주세상’을 갈망한다면 필히 이 『영초언니』를 읽어야 한다. 영초언니의 희생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역사에 대해 책임지는 마음으로.


_조정래(소설가)


 


법은, 법치주의는 그 숱한 오류와 무고한 사람들의 고통과 목숨을 담보로 조금씩 정당해지고 단단해져왔던 것. 이 땅의 법치주의는 그렇게 한발 한발 더딘 걸음을 걸어왔습니다.


43년 전 긴급조치라는 이름으로 법 위에 군림했던 통치자의 2세가 긴 세월을 돌아 결국 법에 의해 탄핵되면서 비로소 박정희 시대가 마감됐다는 지금… 비가 그치고, 밤이 지나면 다시 벚꽃은 필 터인데 꽃보다 가벼운 이슬로 사라졌던 사람들에게 보내는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_손석희(2017년 4월 5일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김광규 시인은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을 뿐 아무도 더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 ‘4.19혁명 세대’의 쓸쓸한 일상을 그려 보였다. 그러나 서명숙이 재현하는 ‘긴급조치 세대’의 이야기는 희미하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이 책이 그린 것은 ‘옛사랑’이 아니라 ‘첫사랑’이다. 세상에 대한 첫사랑으로 불타올랐던 청춘, 같은 대상을 두고 첫사랑에 빠졌던 여자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설명할 길 없는 불운 때문에 말을 잃어버린 ‘영초언니’를 대신해, 대책 없이 씩씩했고 지금도 여전히 어여쁜 그 첫사랑의 떨림과 짜릿함을 전해준 서명숙이 내게 물었다. 짧고, 부질없으며,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우리네 인생에서 이것 말고 다른 무엇이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는 대답한다. 없다!


_유시민(작가)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40여 년 전의 아픈 이야기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영초언니를 만들었고, 영초언니를 기억하는 우리가 다음 시대를 만들 것입니다.  그 길목에서 이 이야기는 결코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잔혹한 격동의 시간 속에서도 뜨거운 우정과 사랑 그리고 작은 웃음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할 언니들. 고맙고 미안합니다.


_이경미(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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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프롤로그_ 바람이 몹시 불던 어떤 날 _05


 

1장_ ‘빨갱이섬’에 태어난 박정희 키드

 

하루 천 번 이름을 불러줘야 살 수 있는 아이 _19

‘서명숙상회’ 딸 서명숙 _22

국민교육헌장 암기왕 _24

“박정희 대통령 각하, 축하드립니다!” _25

변방 명문여고의 한밤 연좌농성 _28

연극배우냐 신문기자냐 _33

 


2장_ 내 인생에 뛰어든 ‘나쁜’ 언니

 

처음 듣는 ‘뉴스’ _39

외부검열보다 무서운 자기검열 _42

“천영초 선배께 인사드려!” _46

“담배 없이 무슨 낙으로 사니?” _48

“나랑 같이 자취할래?” _50

후배 바보 _52

그 여자의 내력 _54

당대 걸크러시들의 모임 ‘가라열’ _56


 

3장_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구로동의 ‘헬조선’ _63

내 방광도, 내 청춘도 터져나가고 _68

봄이 왔건만 나의 봄은 아니요 _71

“박정희는 물러가라, 훌라훌라!” _74

“내복이라도 넣어주자고!” _80

암호명 ‘백장미’ _83


 

4장_ 사람은 가고, 사랑은 오고

 

오해 _87

고대의 ‘잔 다르크’ 혜자언니 _89

친구를 프락치로 의심하던 날들 _95

“바다 보러 가고 싶지 않아?” _97

“날 기다릴 수 있겠니?” _101

눈물의 잉크 _104

오래, 아주 먼 데 _106

‘빵바라지’ _108

한국판 ‘백장미’ 사건의 전말 _111

비둘기 ‘날으는’ 교도소 _114

‘비겁해져야겠다!’ _115

작별 _119

“개뿔 민족고대, 개나 주라지!” _120


 

5장_ 지옥에서 보낸 한철

 

“잠깐 서울 다녀오겠습니다” _129

국회의원 이름과 나란히 칠판에 쓰인 내 이름 석 자 _132

“머리 처박아, 이 쌍년아!” _134

사흘 밤낮을 뜬눈으로 작성한 ‘내 인생 이력서’ _137

듣기만 해도 살 떨리는 ‘산천초목’ 사건 _140

독 묻은 말화살 _144

“나, 미국 CIA에서 훈련받은 고문기술자라고!” _145

형사 ‘삼촌’ _152

“후배 애인까지도 따먹는…” _155

우리 어멍 영자씨 _158

1979년 5월 16일 아침 _160

재회 _163

 


6장_ 수인번호 4141

 

“스물두 살, 참 좋을 때다!” _171

동갑내기 과외선생, 옥주 _173

개털 중의 개털, 소녀 장발장들 _179

밤에만 보이는 편지 _180

너를 보듯 꽃을 본다 _183

교복 입고 면회 온 막냇동생 _186

목욕탕의 일급비밀 _188

“안 믿으시겠지만 간통이에요!” _191

‘국립대학’ 최고의 지압사 _194

그날 영초언니의 외침 _196

지옥 속의 천국 _199

“진짜 빨갱이가 온다!” _202

사법부가 역사의 죄인이다 _205

구치소의 비밀 우체부 _208

학교는 기다리지 않았다 _210

“김재규 장군께서 그러셨다면…” _211

나, 이제 돌아갈래! _215

236일, 출소는 도둑처럼 왔다 _217

 


7장_ 1980, 수상한 ‘서울의 봄’

 

오줌 못 싸는 병 _225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 않니?” _229

“그 짠한 아그들꺼정…” _233

운명의 남자, 정문화 _236

절도범 ‘미라 엄마’ _240

노끈 인형 _243

8장_ 언니가, 웃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그녀 _251

공포의 초인종 소리 _253

결별 _257

37킬로그램의 죽음 _263

“이런 행복은 난생처음이야” _270

“언니, 정말 미안해” _272

그녀는 정물화처럼 앉아 있었다 _274

 


에필로그_ 그뒤 빛나던 청춘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_277

 

 

 

▌저자

 

서명숙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재학 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연행되어 236일간 구금생활과 감옥살이를 했다. 

출소 후 제주로 돌아왔으나,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망가져 이웃으로부터 “맹숙이가 아맹해도 오래 못 살 거 같으난…”이란 말을 들었다. 

훌쩍이는 엄마의 등을 보며 어떻게든 몸을 잘 추스르고 오래오래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스스로 ‘폭풍의 언덕’이라 이름 붙인 외돌개 근처 바위곶에 앉아서 자신을 다독였다. 

상한 몸과 마음을 자연과 길에 내맡긴 이때의 경험은 훗날 고향 제주에 올레길을 내는 단초가 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 수감된 이력으로 인해 한동안 정규직으로 고용되지 못하고 프리랜서 기고가로 

일하다가 1983년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시사저널>과 <오마이뉴스> 편집장 등을 역임하며 23년간 언론계에 있다가, 

2007년 제주로 돌아와 올레길을 만들었다. 현재 제주올레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제주올레의 성공신화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한국 최초로 사회적 기업가의 최고 영예인 아쇼카 펠로에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 

『제주 올레 여행』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식탐』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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